<참나를 찾아서>를 읽어 보시기 전에 다음을 알고서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.
이 책의 내용은 <부처님>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, 그것도 바르게 전하기 위해서 씌여진 것입니다.
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<부처님>의 가르침은 여러 사람들을 거쳐서, 처음부터 문자로 씌여진 것이 아닌, 말에서 말로 구전(口傳)을 통하여, 또한 그 당시에는 역사적으로 볼때 종이가 발명되지 않았으므로 옷감, 나무토막, 돌 위에다 그때의 언어인 <산스크리트>어로 기록된 것을 훗날, 한문으로 번역되어 전해오는 것이 됩니다. <석가·모니> 부처님이 계실적에는 기원전(B.C 500~600년) 경이고, <부처님>이 입멸하시고, 100여년 동안에는 분열이 없었으나, 그 후로 분열이 시작되어 <소승(小乘)>과 <대승(大乘)>으로 분류됩니다.
이것 또한 역사적인 기록으로 아는 것이지,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우리들로써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습니다. 그러나 그 시대에 있었던 부처님 가르침의 경전은, <아함경(阿含經)>으로서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모든 대승경전의 모태가 됩니다. 우리가 보고있는 모든 <대승경전>은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500여년이 지나서야 어느 누군가에 의해서 제작된 것입니다.
처음에는 그 당시 언어인 <산스크리트, 산스크리스트>어로 제작된 것을 중국에서 한문으로 번역된 것으로 우리나라에 전해져 온 것이 대부분입니다. 이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, 더구나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하여 말하고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요? 여기에서 문제가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. 처음으로 부처님 말씀을 옮겨 적을때에도 <부처님>께서 입멸하신 후가 되기때문에 제자들이 외어내어서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, 어느 누가 언제, 어디서, 어떻게,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고, 그저 막연하게 <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.>라는 말로써 시작됩니다.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경전의 대부분을 인도에서 만들어져서 전해진 것이 대부분이지만, 다른 나라에서 (특히 중국에서) 제작된 것도 <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.>라는 말을 빌어서 전해진 것도 많습니다. 이러한 것을 <위경(僞經)>이라고 합니다.
현대에는 일개 소설가들이 부처님 일대기를 적습니다. 부처님께서 깨달으셨다고 하면서도 그 깨달음이 어떤 것인지 무엇인지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면서 그러한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. '<깨달음>을 문자나 말로써는 표현 할 수 없다.'라고, 틀린말은 아닙니다. 내가 말하자면 <깨달음>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것이라도, 심지어 떠다니는 <먼지터럭> 조차도 이름을 만들어서 무엇이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, 표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. 그러나 어떠한 물건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듯이 가르킬수는 있는 것입니다. 말로써 글로써 설명하고 표현 할 수 없으므로 직접 보고 알아라, 하고 가르키는 것입니다. 이런말이 있습니다. 그릇에 담겨있는 물을 직접 마셔보지 않고서는 그것이 찬물인지, 더운물인지, 소금물인지, 설탕물인지 알 수 없다는 것과 같이, 그림 속에 있는 과일을 먹어본 사람과 먹어보지 못하고 그림으로만 본 사람과(그림으로도 보지 못한 사람보다는 조금 나을지 몰라도) 어찌 같을 수가 있을까요? 찬물인지, 더운물인지, 소금물인지, 설탕물인지 마셔보지 않고서 저 그릇에 담겨진 물이 어떤물이다라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, 저 그릇에 담겨진 물을 마셔본 사람은 그 사람이 거짓을 말하는 것을 바로 알아봅니다.
또한 진짜로 마셔본 사람이, 거짓을 말하지 않는것도, 바로 알아봅니다.
<불교>는 엄밀하게 말하면 <참 나를 찾아서> 책에서 밝힌대로 종교가 아닙니다. 세상의 모든 종교는 <기복(祈福)>적인 것입니다. 그러나 <불교>는 <부처님>의 가르침을 실천을 통하여 자신도 <부처님>을 이루는데에 있는 것입니다.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알아야 합니다. 그러기 위해서는 바르게 전달받아야 합니다. 그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. 그 누구든지 바르게 전달 받은 사람은 바르게 이해하고 알게되므로, 또한 바른 실천을 하게 되고 남에게도 바르게 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.
우리나라에 전해진 불교는 과연 어떨까요?
<달마스님>이 중국으로 온 까닭은 부처님 가르침을 바르게 전하기 위해서입니다. 여기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서는 수행하지 말 것을 당부 드립니다.
첫번째, 부처님은 무엇을 부처님이라 하는가?
두번째,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<사성제(四聖諦)>를 완전하게 알고 이해할 것.(완전하게 알고 이해하게 되면 남에게도 바르게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.)
세번째, <팔정도(八正道)>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알고 바르게 이해해서 모두에게 바르게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.
네번째, 부처님의 가르침의 기본은 <중도(中道)> 사상이므로, <중도>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.
여기까지는 <참나를 찾아서> 책 속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. 혹시라도 궁금하신것, 잘 모르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는 분이 계시면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. 성의껏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.
다섯번째, <12인연설>에 대하여서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.
<부처님>의 설법중에서 <사성제>는 <성문>을 위하여, <12인연설>은 <연각.독지불>을 위하여 설하셨다고 <법화경(法華經)>에서 말씀하신 뜻은 이러합니다. <성문.연각>들은 이 몸을 <나>로 알고 있기때문에, 몸이란 <무명~나를 모르는 어리석음>이 잘못된 습관의 집착이 만들어 놓은 <괴로움>이고, <12인연설>은 <괴로움>인 이 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. <나>와 <너>가 없는, 공(空)으로서, 없는것으로써 있는 <참나>, 항상계시는 부처님을 찾기 위해서는 <팔정도>의 바른길을 살아가야 한다는 간곡한 가르침입니다. <숙명(宿命)>을 지나온 내가 지어놓은 삶이라고 한다면, <운명(運命)>은 내가 만들어가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. 영어(English)에는 이런 말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, 글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. <부처님>의 가르침이 제대로 잘 전달이 되었을까?하는 의문이 남습니다. 왜냐하면 부처님 가르침은 지나온 모든 나의 잘못됨을 스스로 반성하고 참회해서 바로잡는데 있습니다. 이것을 <법화경>말씀에서는 <보살>의 도를 구족한다 하였습니다.
여섯번째, <성문>과 <연각.난한.독지불>과 <보살>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.
<법화경> 말씀에서는 <성문>을 3승, <연각.나한.독지불>은 2승, <보살>은 1불승이라하고, 사실은 2승과 3승은 없고, 오로지 1불승 뿐이다라고 하신 뜻과 <부처님>은 오로지 보살만을 수호한다고 하신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. <성문.연각>은 아직 나를 모르기때문에(항상 있는 부처님을 모르기때문에, 견성(見性)하지 못하였기 때문에), 부처님을 이루는 것에(아뇩다라삼먁삼보리) 뜻이 없지만, <보살>은 견성을해서 항상 계시는 부처님을 알아보기 때문에, <보살의 도를 구족하면(모든 나의 잘못됨을 바로 잡고 나면)> 자신도 부처님을 이루는 것을 알고있다는 말씀입니다. <법화경>에서 부처님께서 수기(授記)하신다고 하는데 <수기>의 뜻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. <불교사전?>이라는 곳에서는 <수기>를 부처님이 예언한다고 하는데, 그것은 부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잘못된 말입니다. <수기>란 부처님만이 하실 수 있는 <성문.연각>에 있는 수준을 견성할 수 있도록, 보살이 될 수 있도록, 공덕을 베푸는 것이 됩니다. 따라서 법화경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것이 견성을 무엇보다도 훨씬 빠르게 할 수 있도록 합니다. <과거.현재.미래>에 구속되어 나를 모른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예언이라는 말이 어울리겠지만, <과거.현재.미래>가 없는 <열반(涅槃)>에 계시는 부처님을 그 누가 알 수 있을까요?
일곱번째, 공견(空見)에 빠지지 말라.
<능가경(楞伽經)> 말씀에 있는 부처님께서 특히 강조하시는 가르침입니다. <반야심경>은 처음서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것이 공(空)하다고 하는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. <참 나를 찾아서> 책 속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. 여기서 한번 더 말씀드리자면, <관자재 보살이 다섯 가지 쌓임 오온(색.수.상.행.식)>이 공한 것을 알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건지느니라.> 거의 모든 사람들이 <견성>하지 못하여 참 나가 <관자재.관세음> 보살인줄 모르고, 색(나의 몸), 수(나의 감정), 상(나의 생각), 행(나의 모든 움직임), 식(나의 모든 움직임에서 오는 작용)에 속아서 괴로움과 재앙을 받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에는 <보살이 되면, 견성해서 부처님을 알아보게 되면> 거기에서 벗어난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. <공견>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. 원래 죄란 없는 것이다. 말은 틀린말이 아닙니다. 죄 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것도 처음부터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. 공(空)으로써 있는, 없는 것으로써 있는 그 무엇이 욕심과 어리석음과 성냄과 어우러져서 죄(罪)를 만들어낸 것입니다. 그 죄를 짓는 것은 이 몸을 나라고 알고 있기때문에 몸으로 짓고, 말로써 짓고, 생각으로 짓게 되는 것으로써, 절대 견성했다고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. <보살의 도를 구족한다라는 뜻을 책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.> <참 나를 찾아서> 책은 창작 음악으로 <법음(法音)>을 전하기때문에 법음의 노래를 듣다보면 훨씬 빠르게 전달되고, 부처님의 공덕을 입을 수 있을 것입니다. 먼저 책 속에서 말하는 모든 것을 이해한 후에 음악을 통해서 들려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슴속으로 음미하고 다짐해서 실천한다면 참으로 훨씬 빠르게 부처님의 큰 공덕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.
여덟번째, <부처님>은 부처님의 선정과 삼매를 통해서 보살들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이끌어 주십니다. 여기에서 확실한 정의를 내립니다.
부처님의 삼매와 선정을 전혀 알지도 못하는, 참으로 저 그릇 속에 담겨 있는 물이 찬물인지, 더운물인지, 짠물인지, 단물인지, 싱거운물인지 마셔보지 않은 사람들이, 부처님의 삼매와 선정을 아는척 떠들어대고, 심지어는 자신이 부처님인 것처럼, 삼매와 선정을 책으로 해설하고 남을 가르칩니다. 큰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. 어느 <불교 방송>이란 곳에서 이런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. "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던 한 수행자가 부처님을 뵈오려 하다가 그 시간에는 부처님께서 <명상>을 하시는 시간이라서 기다리고 있었다."라고 말입니다. 내가 묻겠습니다. <부처님>도 <명상>을 하실까요? <부처님>을 그렇게 잘 알면서도 자신은 누구인지는 왜 모릅니까? <참 나를 찾아서> 책 속에 <부처님>은 무엇이 <부처님>인지 최소한의 설명이 있습니다. <부처님>을 바로 알아보는 것이 바로 <견성(見性)>하는 것입니다. <명상(?)하시는 부처님> 소리는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을까요? <석가.모니> 부처님을 <아미타> 부처님을 백겁.만겁을 모시고 살더라도 그 겉모습이 부처님인줄 알면, 그일을, 어찌 할까요?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일은 믿을수가 없고, 믿으려해도 어려운일이 됩니다. <참 나를 찾아서> 책 속에 p141부터 <지장경(地藏經)>이 나오고 이어서 <능엄경(楞嚴經)에 대한 소개가 있습니다. 여기에서 <번뇌를 없애는 세 가지 학문(계.정.혜(戒定慧)>이 나옵니다.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<번뇌>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. <불교사전(?)>이라는 곳에서는 잘못 해설하고 있으므로 p91부터 잘 읽고 알아야 합니다. 3승의 성문승이나 2승의<연각.나한.독지불>의 차원은 <견성>을 모릅니다. 그러기 때문에 번뇌를 멸한 <멸진정>의 상태를 <열반(涅槃)>인줄 압니다. <번뇌>는 깨달음의 씨앗이 되는 줄을 모르고 무조건 없애버리려고만 하는 것입니다. <지장경>에서 부처님께서 <도리천> 천상을 다녀오신것을 현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믿을 수 있을까요?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진실입니다. 지금 세상에 달나라 왔다 갔다하는 과학의 세상에서 그런일은 있을 수 없다고, <신화> 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. <참 나를 찾아서> 책 속에서 말했지만 요줌 세상에서 말하는 과학가지고는 우리가 살고있는 이 태양계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. 여기에서 계산하는 그러한 수학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. 할 수 있는것은 남 죽이고, 파괴하는것만 할 뿐입니다. 지금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전쟁을 통해서 발전한, 인간의 본성을 말살해 온 <파괴학>이기 때문입니다. <부처님> 가르침대로 수행을 하다보면 견성하게 되고, 견성을해서 <부처님>을 알아보는 <보살>이 되면, 그때부터 부처님의 선정과 삼매의 힘으로,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나의 전생을 알게되고, 부처님께서 삼매를 통해서 <보살>을 가르치고 보호하는 것을 알게됩니다. 직접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. <부처님>의 가르침은 바르게 전달되어야하는 것으로서 아무나 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. 그러나 지금의 말법 세상에서는 부처님의 바른 법을 바르게 해설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매우 어렵다고 <법화경>에서 말씀하셨습니다.
아홉번째, <부처님>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수행자는 <정견(正見)>을 가지고 이 말법 세상에서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을 지켜야 합니다.
우리에게 전해오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부처님이 직접 적고 만드신것이 아니기때문에, 어느 사람의(전하는 어느 사람) 차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이 첨삭되어 전해진 것이 많습니다. 그러한 잘못된 견해를 정당화 시키기 위해서 있지도 않았던 일들을 만들어서 전한 것도 있습니다. 몇 가지 예를 들어봅니다. <선종>에서 주장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섭에게 전하고, 가섭은 아난에게 전하고, 그렇게해서 28대 달마에게, 그렇게 해서 육조 혜능에까지 이르렀다고 <육조 단경(?)>에서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정작 <달마> 스님은 내가 28대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. <가섭>이 <아난>을 깨닫게 했다고 했는데, 그때는 <능엄경>이 아직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, <선종>에서 만들어낸 말이 됩니다. <견성성불(見性成佛)>과 같이 말입니다. 사실 <육조단경>이라는 것도 <육조어록>으로 해야합니다. <능엄경>에 나오는 부처님이 <아난>을 깨닫게 합니다. 또한 <법화경>에 보면 <가섭>도 <아난>도 모두 부처님께서 수기를 내립니다. 여기서 수기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<보살의 도>를 구족해야 한다고 했습니다. 물론 <능엄경>에서도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. 부처님이 <아난>을 깨닫게 하고서 아난에게 법을 부촉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.
"너는 지금부터 <적멸>에 들지말고 다시 <윤회(輪迴)>에 들어서 모든 인연있는 사람을 구하고 이 법을 전하라"
여기에서 이 말씀을 전하는(?) 이 사람은 부처님의 <열반>을 자신과 같은 <성문승.연각승> 수준으로 <적멸>의 상태라고 알고있는 것입니다. 정말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. 여기서는 <적멸>을 <열반>으로 고쳐서라도 적어야 합니다. 부처님의 <열반>을 그 누구도(시방 부처님을 제외하고) 말할 수 없습니다. <육조어록>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. 어느 제자가 <법화경>에서 나오는 부처님의 <일대사 인연>에 대하여 물었다 합니다. 여기에 그 말을 해설했다 하는데, 어떻게 해설 하였는지는 말하지 않고, 이렇게 말했다하고 있습니다.
"너는 앞으로 <법화경>에 굴리지 말고, <법화경>을 굴리는 사람이 되라."
내가 말합니다. <법화경>은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<수기>하시는 내용인데, <육조>가 <법화경> 설했다고 누가 말한 사람 있나요? <육조> 혜능이 잘못한 것인지, 전하는 그 누군가 잘못한 것인지, 같이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.
열번째, 부처님의 <열반(涅槃)>과 윤회에 대한 확실한 앎을 가져야 합니다.
<참 나를 찾아서> 책 p47을 공부하도록 합니다.
여기까지 <참 나를 찾아서> 책을 구입하신 분들이 반드시 보아야하는 몇 가지 전하는 말을 마칩니다.
<나무 마하 반야 바라밀>
묘음. 적음
2026. 02. 02(음.12月 보름날)
교재1권이미지
▣ 목 차
마음은 생각이 아니다
인도불교
삼보(三寶)
- 부처님(佛)
- 견성성불(見性成佛)
- 생각은 마음의 그림자
- 법(法)이란
- 승(僧)이란
- 십대제자
천상의 세계
성문·연각 그리고 보살
업(業)
이성계와 무학대사
귀의의 노래
오탁악세
바사닉 왕
청법의 노래
축복의 노래(신묘장구대다라니)
발원의 노래(이산혜연선사발원문)
아난존자
원효스님
달마
마조, 도일
번뇌·망상-문자법사
깨달음
문수사리보살
한글반야심경(진리의 노래)
제사의식
침묵의 가르침
아난존자의 7가지 꿈
육조 혜능, 금강경
덕산 스님
지장경, 츰부다라니
능엄경, 아난존자
반달라 주
반달라 주 공덕품
능가경(楞伽經)
능가경 주
대승경(大乘經)
화엄경(華嚴經)
묘법연화경(妙法蓮華經)
- 서품(序品)
- 방편품(方便品)
- 비유품(譬喩品)
- 신해품(信解品)
- 약초유품(藥草喩品)
- 수기품(授記品)
- 화성유품(化城喩品)
- 오백제자수기품(五百弟子授記品)
- 수학무학인기품(授學無學人記品)
- 법사품(法師品)
- 권지품(勸持品)
- 안락행품(安樂行品)
- 여래수량품(如來壽量品)
- 분별공덕품(分別功德品)
- 수희공덕품(隨喜功德品)
- 법사공덕품(法師功德品)
- 상불경보살품(常不輕菩薩품)
- 여래신력품(如來神力品)
- 촉루품(囑累品)
- 관세음보살보문품(觀世音菩薩普門品)
- 묘음보살품(妙音菩薩品)
열반경(涅槃經)